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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8군 미술교사에서 화가로…아테네 '마지막 잎새' 꿈꾸는 한종엽씨

중앙일보입력 2022.08.15 15:11

한종엽 씨가 그린 '앤드 또는 엔드(And or End).' 우크라이나 전쟁의 끝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한종엽 씨 본인 제공


유엔이 지정한 여러 기념일을 주제로 한 국제 미술전에서 한인 화가가 올해 두 번 입상해 화제다. 주인공은 그리스 아테네에 거주하는 한종엽(75) 씨. 그는 지난 3월엔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단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그림으로, 지난달엔 아동학대의 근절을 바라는 그림으로 디베르시아(Diversia) 미술전에서 입상했다. 그는 본지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림은 치유의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며 “(미국 작가)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서 한 화가가 죽어가는 소녀에게 그림으로 희망을 전해주었듯, 나 역시 시대의 고통을 미술로 달래고 싶다는 희망을 담았다”고 말했다.

화가 겸 사업가 한종엽 씨. 사진 본인 제공.


한 씨는 광복과 6ㆍ25 전쟁의 중간 지점인 1947년 태어났다. 화가의 꿈을 품고 서울예고(1953년 설립)에 입학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그럼에도 화가의 꿈을 버릴 수 없어 당시 흔히 ‘미8군’이라 불렸던 주한미군 제8군 부대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일을 찾아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해외 진출의 기회를 잡았고, 한국을 떠나 유럽에 터를 잡았다. 그는 “당시엔 일단 한국을 떠나고 싶었고, 미국이 대세이긴 했으나 유럽에서 활동할 기회를 잡아 이탈리아와 독일을 거쳐 현재 그리스 아테네에 자리를 잡게 됐다”고 회고했다.

몸은 한국을 떠났지만 마음만은 한국과 연을 이어갔다. 사업과 화가 생활을 병행하면서 한국과 그리스의 교류전시를 추진하고, 아테네에 북한미술 관련 전시회를 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에서 수여하는 상도 다수 받았다. 한인 무역협회 상임이사를 지내며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화가로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그림을 출품해 통일부장관상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달 국제 전시에서 입상한 작품, '나를 보지 마세요(Don't Look at Me)'. 아동 학대 중단을 촉구하는 마음을 담았다. 한종엽 씨 본인 제공


한반도에 이어 우크라이나까지, 평화는 그의 오랜 화두다. 지난 3월 그에게 입상의 영예를 안긴 작품의 제목은 ‘앤드 또는 엔드(And or End)’다. 그림 속엔 군인이 무엇인가를 안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끝을 염원하는 내용에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그는 “‘그리고’라는 뜻의 ‘앤드’와 ‘끝’이라는 뜻의 ‘엔드’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점에 착았했다”며 “결국 ‘엔드’는 ‘앤드’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뜻을 담았고, 전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안타까움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열심히 살아오며 지금은 모든 작품을 유언을 남긴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있다”며 “가능하다면 고국에서도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을 갖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는 “미술계의 벽은 높지만 그래도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가 상업적 판매가 아닌 자선과 기부를 목적으로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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